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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이다”라는 인식이 만든 문제

by sowantyy 2025. 12. 20.

사람들이 모이면 가장 많이 대화하는 주제 중에 하나가 돈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솔직하게 돈얘기를 하면 속물이라니! 난 이런 관점이 문제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이다”라는 인식이 만든 문제
“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이다”라는 인식이 만든 문제


“돈 얘기 좀 하지 마.”
“너무 돈 밝히는 거 아니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돈 이야기는 왠지 품위 없고, 계산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주제였다. 그래서 돈은 늘 중요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드러내면 안 되는 것으로 취급돼 왔다.
이 인식은 지금도 여전히 강력하다. 연봉, 수입, 비용, 대가 같은 이야기는 불편한 침묵 속에 묻히기 쉽다. 대신 우리는 ‘열정’, ‘의미’, ‘보람’ 같은 말로 돈의 자리를 대신 채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돈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말해지지 않을 뿐 계속해서 작동한다는 점이다.
“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이다”라는 인식은 겉보기엔 도덕적인 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문제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피해는 생각보다 조용히, 그러나 깊게 누적된다.

 

돈을 숨길수록, 불평등은 더 견고해진다


돈 이야기를 터부시하는 문화는 겉으로는 모두를 평등하게 보이게 만든다. “다들 비슷하게 사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
돈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정보를 가진 사람만 계속 유리해진다. 연봉 협상, 투자, 소비 기준, 대출 조건 같은 것들은 누군가는 알고 누군가는 모른다. 그런데 이 차이를 드러내지 않으니, 격차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차이로 오해된다.
“쟤는 원래 잘하니까 돈을 많이 버는 거야.”
“나는 돈에 관심 없어서 그런 선택 안 했어.”
이런 말들은 현실을 미화한다. 사실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접근성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로 보인다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은 묻지 않고 공유하지 않는다.
그 결과, 돈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손해를 본다. 질문하지 못하고, 비교하지 못하고, 기준을 세우지 못한다. 반대로 이미 잘 아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유리한 선택을 반복한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돈에 대한 침묵은 언제나 기득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속물’이라는 낙인은 정당한 요구를 죄책감으로 바꾼다


돈 이야기를 꺼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종종 비슷하다.
“왜 그렇게 돈만 봐?”
“의미 있는 일은 돈이 안 돼도 해야지.”
이 말들에는 은근한 도덕적 압박이 숨어 있다. 돈을 요구하는 순간, 그 사람은 순수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이 프레임은 특히 사회 초년생이나 협상 경험이 적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다.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내가 너무 욕심 많은 건 아닐까?”
“이런 얘기 꺼내면 인상이 나빠지지 않을까?”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 가치보다 낮은 금액에 합의하거나, 불리한 조건을 감수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스스로 미화한다. “돈 말고 다른 걸 얻었으니까 괜찮아.”
물론 돈만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해서, 돈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돈은 생존과 선택의 폭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돈을 말하는 순간 ‘속물’이라는 낙인이 붙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를 숨기는 데 익숙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인식은 돈을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무기가 된다. 그들은 돈 이야기를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숨기는 사람들의 망설임을 이용한다.

 

건강한 사회는 돈을 말할 수 있는 사회다


돈을 많이 이야기한다고 해서 모두가 속물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돈을 전혀 말하지 않는 사회가 더 위험하다. 돈이 투명하게 논의되지 않을수록, 왜곡된 가치관이 자리 잡기 쉽다.
돈을 말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이런 질문이 가능해진다.
이 일의 대가는 적절한가?
이 구조는 누구에게 유리한가?
우리는 무엇에 얼마를 지불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탐욕이 아니라 현실 감각에서 나온다. 돈을 말할 수 있어야, 돈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돈을 말하지 못하면, 우리는 돈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채 살아가게 된다.
진짜 속물적인 태도는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모든 결정을 좌우하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치는 대개 침묵 속에서 일어난다.
돈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수록, 우리는 돈의 역할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제자리를 찾는다.
마치며
“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이다”라는 인식은 겉보기엔 고상해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왜곡과 침묵이 쌓여 있다. 이 인식은 사람들을 더 도덕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안하게, 더 불리하게 만들었다.
돈을 말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자기 삶을 책임지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돈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공정한 선택을 할 수 있고,
더 이상한 죄책감 없이 자신의 가치를 주장할 수 있다.
속물처럼 보일까 봐 침묵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쪽이 더 성숙한 태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