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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앞에서의 나와 동료 앞에서의 내가 다른 이유

by sowantyy 2026. 1. 16.

오늘은 회사가 만들어낸 나의 두 자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같이 있는 사람에 따라 나의 표정과 말투가 바뀌는걸 경험하게 된다. 방금 전까지 동료들과 웃으며 나누던 대화가 상사가 등장하는 순간 뚝 끊기고, 말투와 표정, 자세까지 자연스럽게 바뀌는 순간. 누구도 “이제부터 다른 사람이 되자”고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다. 지금부터는 상사 앞에서의 나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이 글은 그 자연스러운 전환 뒤에 숨은 심리, 그리고 회사가 만들어낸 두 개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다.

 

상사 앞에서의 나와 동료 앞에서의 내가 다른 이유
상사 앞에서의 나와 동료 앞에서의 내가 다른 이유

 

공간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는 이유


같은 사무실, 같은 자리, 같은 하루인데도 누구와 마주하느냐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동료 앞에서는 솔직하고 가볍게 말하던 내가, 상사 앞에서는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다. 웃음의 강도도 달라지고, 말의 속도도 느려진다. 이 변화는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연기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바뀌었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깨닫는다.
이 차이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권력의 비대칭이다. 상사는 나의 평가자이고, 결정권자이며, 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앞에서의 나는 ‘나 자신’이기 이전에 ‘평가받는 대상’이 된다. 반면 동료는 같은 선상에서 일하는 사람, 이해와 공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다. 이 관계의 차이가 행동의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상사 앞에서는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확신이 있어도 한 번 더 완곡하게 표현하고, 불편한 의견은 한 겹 포장해서 꺼낸다. 반대로 동료 앞에서는 맥락을 생략해도 통하고, 감정을 섞어도 안전하다고 느낀다. 이 차이는 개인의 이중성이라기보다, 환경에 대한 적응이다.
문제는 이 적응이 반복되면서,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상사 앞에서의 내가 더 ‘프로다운 나’인지, 동료 앞에서의 내가 더 ‘진짜 나’인지 스스로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말투 하나에도 계산이 들어가는 순간들


상사 앞에서의 나는 말투부터 달라진다.
동료에게는 “이거 좀 애매한데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상사에게는 “조금 더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로 바뀐다. 같은 생각이지만, 표현은 전혀 다르다. 이 차이는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다. 오해받지 않기 위한 방어에 가깝다.
상사 앞에서 우리는 종종 ‘틀린 사람’이 되지 않으려 애쓴다.
모르는 건 아는 척하고, 확신 없는 부분은 애매하게 넘긴다. 질문 하나에도 타이밍을 재고, 말 한마디에 어떤 해석이 붙을지 미리 상상한다. 이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반면 동료 앞에서는 실패나 실수를 비교적 편하게 드러낼 수 있다. “이거 잘 모르겠어”라고 말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동료 앞의 나는 더 느슨하고, 덜 계산적이다.
이 두 태도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일은 생각보다 피곤하다.
상사 앞에서 긴장하고, 동료 앞에서 풀어졌다가, 다시 긴장하는 반복. 이 리듬에 익숙해질수록 회사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유 없이 지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두 개의 나 사이에서 생기는 미묘한 균열


상사 앞의 나와 동료 앞의 내가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차이가 너무 커졌을 때 생긴다. 상사 앞에서는 항상 순응적인 사람, 동료 앞에서는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되어버릴 때, 그 간극은 내 안에 균열을 만든다.
동료들과 나눈 솔직한 대화가 회의실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왜 이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대부분 명확하다. 말했을 때의 결과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은 생각들은 어디로 갈까.
대부분은 마음속에 쌓이거나, 퇴근 후의 피로로 전환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회사에서의 나는 점점 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에 가까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은 종종 ‘진솔한 소통’을 강조한다.
하지만 진솔함은 권력의 격차가 줄어들 때 가능해진다. 상사 앞에서의 나와 동료 앞에서의 내가 다른 이유는, 우리가 솔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솔직해도 괜찮지 않은 구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상사 앞에서의 나와 동료 앞에서의 내가 다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우리는 그때그때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행동할 뿐이다. 그 선택이 반복되면서, 회사 안에는 두 개의 내가 만들어진다.
어쩌면 중요한 건 두 모습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나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해가 생길 때, 우리는 적어도 스스로를 이중적인 사람이라 자책하지는 않게 된다.
회사에서의 나는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그 제약 속에서 만들어진 두 개의 나 역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회사 생활은 아주 조금 덜 버거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