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다보면 한번은 겪는 순간이다. 회의를 하게 되면 팀장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게 된다. 그리곤 우리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만, 회의에 앉아있는 모두는 알것이다. 팀장님은 절대 내 의견이 궁금해서 묻는것이 아니란 것을!!!

의견을 내는 척해야 할 때의 피로감에 대하여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회의가 ‘결정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걸 빠르게 눈치채게 된다.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고, 오늘의 회의는 그 결정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우리는 질문을 받고, 고개를 끄덕이고,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 글은 바로 그 순간, 이미 결론을 알면서도 의견을 내는 척해야 할 때 느끼는 묘한 피로감에 대한 이야기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이미 끝나 있는 결론들
회의 안건을 미리 받아본 순간부터 감이 오는 경우가 있다.
자료의 흐름, 강조된 그래프, 반복되는 키워드. 그리고 상사의 첫 마디.
“이건 여러 방향을 열어두고 이야기해보죠.”
이 말이 나오는 순간, 우리는 안다.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고, 오늘 회의의 목적은 ‘의견 수렴’이 아니라 ‘동의 수집’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회의는 꽤 오래 진행된다.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는 척, 다른 선택지를 언급하는 척하지만, 실제로 선택지들은 하나씩 힘을 잃는다. A안은 리스크가 크고, B안은 일정이 어렵고, 결국 C안만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C안은 애초에 정해져 있던 답이다.
이 구조를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회의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도 바뀐다.
‘어떤 의견을 내야 할지’보다 ‘어디까지 동의하는 척해야 안전할지’를 계산하게 된다. 너무 적극적으로 반대하면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되고, 너무 소극적이면 존재감이 사라진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 중간쯤, 이미 정해진 결론을 조금 다듬는 역할에 머문다.
이때부터 회의는 생각을 쓰는 자리가 아니라, 태도를 조율하는 자리가 된다.
“의견 있나요?”라는 질문이 부담이 되는 이유
회의에서 가장 피곤한 순간은 종종 질문 하나로 찾아온다.
“다른 의견 있으신 분?”
이 질문은 겉으로 보면 열린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많은 전제를 담고 있다.
이미 흐름은 정해졌고, 이제 누군가가 그 흐름에 적당한 말을 얹어주길 바라는 단계. 이때 정말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서 ‘다른 의견’이 환영받는지, 아니면 단순히 형식적으로 던지는 질문인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큰 방향에서는 동의하고요”
“말씀 주신 내용에 공감하고요”
“조금 보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완전한 반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로운 대안도 아닌 말들.
이 말들은 회의록에는 ‘의견 제시’로 남지만, 실제로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의견을 내는 행위 자체를 연기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는 말을 고르는 일. 그러다 보면 회의가 끝났을 때 묘한 피로가 남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에너지는 빠져 있다.
이 피로의 정체는 단순한 업무량 때문이 아니다.
진짜 생각을 숨기고, 조직이 원하는 형태의 말만 꺼냈을 때 생기는 감정 소모에 가깝다.
동의하는 척하는 회의가 남기는 것들
이런 회의가 반복되면, 개인에게 몇 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째, 회의에서 점점 말수가 줄어든다.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고, 굳이 에너지를 써서 다른 의견을 낼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회의는 ‘참여의 장’이 아니라 ‘확인 절차’가 된다.
둘째, 생각은 있지만 말하지 않게 된다.
말해봤자 바뀌지 않는다는 경험이 쌓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의견은 머릿속에만 남고, 회의실 밖에서 동료에게 조용히 흘러나온다.
셋째, 회의에 대한 태도가 냉소적으로 변한다.
회의가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결론을 포장하는 의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감정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회의 방식은 당장 큰 갈등을 만들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일정은 무리 없이 진행된다. 그래서 문제는 더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조직 안에 서서히 쌓이는 것이 있다. 말하지 않는 습관, 생각을 접어두는 태도다.
그리고 언젠가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정말 필요한 의견이 나오지 않는다. 그때가 되어서야 조직은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라고 묻지만, 이미 그 질문에 답할 사람들은 회의실에서 침묵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회의에서 동의하는 척하지만 이미 결론을 아는 순간, 우리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꽤 많은 감정 노동을 하고 있다. 생각을 숨기고, 분위기를 읽고, 조직이 원하는 언어로 자신을 번역하는 일. 이 피로는 야근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누적된다.
어쩌면 중요한 건 회의에서 항상 솔직해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피로가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라는 걸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걸 인식하는 순간, 회의는 여전히 피곤하지만, 그 피로를 혼자 짊어지지는 않게 된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회사 생활은 아주 조금, 견딜 만해진다.